귀하는 로그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대로 편집하면 귀하의 IP 주소가 편집 기록에 남게 됩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반박 === * 일본은 안용복의 행동을 조선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의 증언을 불신하려 하지만, 안용복의 활동이 일본 측에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독도(우산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했으며, 이를 일본 측이 받아들여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도항 금지가 확립되었다. ** 실제로 1696년 에도 막부는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도항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안용복 사건 이후에 이루어진 조치다. ** 일본 외무성은 안용복의 활동이 막부의 결정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사건이 일본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쳤음은 부정할 수 없다. * 조선 정부는 안용복의 개인 행동을 조정에서 명령한 것이 아니라고 했을 뿐, 그가 주장한 내용 자체가 조선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고 한 적은 없다. ** 당시 조선은 일본과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안용복의 독자적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을 가능성이 크다. ** 그러나 이후 조선 정부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기록을 여러 문헌에 남겼다. * 일본은 안용복의 증언이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활동 이후 조선 문헌에서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기록한 사례가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역사적 사실로서 의미가 크다. * 결국 안용복 사건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일본 측에 공식적으로 주장한 중요한 사례이며, 일본이 이후 독도에 대한 명확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편집 요약 가온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가온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